가을편지

찬비 내리고 /나

2747 2007. 9. 22. 10:13

         

          찬비 내리고 /나희덕


          우리가 후끈 피워냈던 꽃송이들이
          어젯밤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밤새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들이 또한 그러하여
          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아슬하게 저를 매달고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
          저리도 눈부신가요

          몹시 앓을 듯한 이 예감은
          시들기 직전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 같은 것인가요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