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내 삶의 전부입니다. 우울했던 23년의 인생에서,
유일한 행복은 그녀와 함께 한 3년뿐입니다.
나는 지금 목포교도소에 있습니다. 벌써 10개월째.
시계는 멈췄습니다. 나를 기다리는 그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에 10통씩
편지를 쓰는 것뿐입니다.
연선씨는 지금 아픕니다. 중증 루푸스 환자입니다.
2003년 초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자신의 병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1주일에 3번씩 병원에 다니면서도
“위염과 십이지장염이 심해서”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지난해 4월, 병원에 간 연선씨로부터 연락이 끊겼습니다.
병원에 전화를 해보니 응급실에 있다고 했습니다.
담당의사는 “루푸스 합병증으로 신부전증이 심각하다”고
말했습니다. 92년에 처음 증세가 나타났고 10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답니다.
한때는 몸이 부어서 몸무게가 105㎏까지 나갔고요.
이틀에 한번씩 병원에 간 것도 신장투석을 위해서였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가 미웠습니다.
나한테까지 거짓말을 하다니…. 혹시 내가 버릴까 두려워서
그랬을까요. 나중에 이 병으로 전 남편에게 버림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하루종일 펑펑 울었습니다.
3년 전 목포의 한 교회에서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전과 9범에게 사회는 냉정했고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에게 의지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찾은 교회에서 만난 그녀. 처음 보는 순간
“하나님이 나를 위해 그녀를 보내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엔 부담스러워하던 그녀도 결국 나의 사랑을 받아들이더군요.
한 달 뒤, 그녀를 집안에 소개했습니다.
“평생 뒤치다꺼리 할거냐”며 아버지는 거품을 물고
쓰러지셨습니다. 3대독자 아들이기에 용납할 수 없었겠지요.
온가족이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녀 없인 살 수 없었습니다.
결국 집을 나왔지요.
그래요. 그때부터 우린 부부였습니다. 전세 3백만 원의 옹색한
살림살이였지만 행복했습니다. 연선씨와 함께 병원 가는 일이
즐겁기만 하고 라면을 먹어도 맛있었습니다.
사랑을 한다는 건 이런 느낌일까요. 상대방에게 잘해주지 못해
안달나는 감정 말입니다.
지난해 5월13일, 우리는 신혼여행을 갔습니다.
서울로 올라와 뚝섬과 롯데월드를 구경했습니다. 소녀처럼
좋아하던 연선씨. 투병 때문에 20년 만에 찾은 서울이었답니다.
여행 중간에도 투석을 받아야 했지만 그녀는 너무
행복해했습니다. 빨리 병이 나아 연선씨와 함께 세계일주를
하는 꿈을 꿔 봅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녀와 떨어져 차가운 감옥에 있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한 이곳에 들어와 있습니다.
빨리 나가야 합니다.
그녀에게 내 신장을 전해줘야 합니다. 그녀가 건강해질 수만
있다면 심장이라도 떼어주고 싶습니다.
이럴 때 그녀 곁에 있지 못하는 내가 너무도 밉습니다.
하나님, 제발 그녀를 보살펴 주세요.
▶연선의 편지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친구에게 빌렸다는 그 말을.
갑자기 큰돈이 어디서 났나 의심을 했어야 했는데.
지난해 8월, 증세가 악화돼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흔히 있는 일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병원비가
걱정이었습니다. 동석씨가 한달음에 달려왔지만 병원비
얘기를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동석씨가 2백만 원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병원비를 다 해결했으니 걱정말라고 하더군요.
저는 정말 바보같이, 그 말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틀 후, 저는 제 눈앞에서 동석씨가 경찰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을 쥐어뜯어야 했습니다.
아르바이트하던 PC방에서 돈을 훔쳤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얼마 뒤, 목포교도소에 수감됐습니다.
모두 저 때문입니다.
동석씨를 만난 건 운명이었습니다. 그는 83년생, 나는 67년생.
무려 16살차이. 처음엔 동생처럼 대해줬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게 사랑이 될 줄이야. 처음 만나고 얼마 안돼서
그는 입원했습니다. 4일 밤낮을 앓더군요.
안타까운 마음에 간호를 해줬습니다. 그때 나에게 사랑을 느꼈나
봅니다. 하지만 나는 루푸스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였기에
그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2003년 말, 동석씨가 다시 응급실에 실려갔습니다.
도대체 무슨 병이냐고 물었지만 대답을 안하더군요. 의사선생님은
다발성 경화증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 병이 뭔가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물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좀 골치 아픈 병이죠”라고 대답하더군요. 몸이 굳거나 심하면
신경이 마비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왜 신은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걸까요.
그 순간 그를 사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내 한 몸
가누기 힘들지만 그를 보살펴 주고 싶었습니다. 한참 후에
내 병을 그에게 말했지만 이미 마음은 그에게 넘어가 있었습니다.
동석씨는 “내가 돈을 벌어서 당신을 치료해야 할텐데”라며
자책을 했죠. 하지만 그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에겐 내가 필요했고 나는
그를 사랑했습니다.
20년 만의 서울 나들이는 황홀했고 신혼생활은 달콤했습니다.
혼인신고는 못했습니다. 생활보조대상자에게 나오는 국가보조금
22만원이 끊길까봐 걱정이 됐습니다.
보호자가 생겨 무료 신장투석도 못하게 될까봐 겁났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부부였습니다.
그에게서 매일 10통씩 편지가 옵니다. 내용은 매번 같습니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운동 열심히 하고 건강히 지내라는
당부, 그리고 제발 기다려달라는 말….
우리 사이를 반대하던 제 딸도 동석씨 편지에 감동받아서 결국
마음을 열었습니다.
내년 3월이면 그가 돌아옵니다. 그 생각만 하면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그가 나오면 울 것 같아요. 다시는 그런 곳에
들어가지 말라고. 다시는 나를 혼자 두지 말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운명인 것 같아요.
사랑할 운명이오. 내 운명을 만나게 해주신 신께 감사드립니다.
유일한 행복은 그녀와 함께 한 3년뿐입니다.
나는 지금 목포교도소에 있습니다. 벌써 10개월째.
시계는 멈췄습니다. 나를 기다리는 그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에 10통씩
편지를 쓰는 것뿐입니다.
연선씨는 지금 아픕니다. 중증 루푸스 환자입니다.
2003년 초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자신의 병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1주일에 3번씩 병원에 다니면서도
“위염과 십이지장염이 심해서”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지난해 4월, 병원에 간 연선씨로부터 연락이 끊겼습니다.
병원에 전화를 해보니 응급실에 있다고 했습니다.
담당의사는 “루푸스 합병증으로 신부전증이 심각하다”고
말했습니다. 92년에 처음 증세가 나타났고 10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답니다.
한때는 몸이 부어서 몸무게가 105㎏까지 나갔고요.
이틀에 한번씩 병원에 간 것도 신장투석을 위해서였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가 미웠습니다.
나한테까지 거짓말을 하다니…. 혹시 내가 버릴까 두려워서
그랬을까요. 나중에 이 병으로 전 남편에게 버림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하루종일 펑펑 울었습니다.
3년 전 목포의 한 교회에서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전과 9범에게 사회는 냉정했고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에게 의지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찾은 교회에서 만난 그녀. 처음 보는 순간
“하나님이 나를 위해 그녀를 보내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엔 부담스러워하던 그녀도 결국 나의 사랑을 받아들이더군요.
한 달 뒤, 그녀를 집안에 소개했습니다.
“평생 뒤치다꺼리 할거냐”며 아버지는 거품을 물고
쓰러지셨습니다. 3대독자 아들이기에 용납할 수 없었겠지요.
온가족이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녀 없인 살 수 없었습니다.
결국 집을 나왔지요.
그래요. 그때부터 우린 부부였습니다. 전세 3백만 원의 옹색한
살림살이였지만 행복했습니다. 연선씨와 함께 병원 가는 일이
즐겁기만 하고 라면을 먹어도 맛있었습니다.
사랑을 한다는 건 이런 느낌일까요. 상대방에게 잘해주지 못해
안달나는 감정 말입니다.
지난해 5월13일, 우리는 신혼여행을 갔습니다.
서울로 올라와 뚝섬과 롯데월드를 구경했습니다. 소녀처럼
좋아하던 연선씨. 투병 때문에 20년 만에 찾은 서울이었답니다.
여행 중간에도 투석을 받아야 했지만 그녀는 너무
행복해했습니다. 빨리 병이 나아 연선씨와 함께 세계일주를
하는 꿈을 꿔 봅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녀와 떨어져 차가운 감옥에 있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한 이곳에 들어와 있습니다.
빨리 나가야 합니다.
그녀에게 내 신장을 전해줘야 합니다. 그녀가 건강해질 수만
있다면 심장이라도 떼어주고 싶습니다.
이럴 때 그녀 곁에 있지 못하는 내가 너무도 밉습니다.
하나님, 제발 그녀를 보살펴 주세요.
▶연선의 편지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친구에게 빌렸다는 그 말을.
갑자기 큰돈이 어디서 났나 의심을 했어야 했는데.
지난해 8월, 증세가 악화돼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흔히 있는 일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병원비가
걱정이었습니다. 동석씨가 한달음에 달려왔지만 병원비
얘기를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동석씨가 2백만 원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병원비를 다 해결했으니 걱정말라고 하더군요.
저는 정말 바보같이, 그 말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틀 후, 저는 제 눈앞에서 동석씨가 경찰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을 쥐어뜯어야 했습니다.
아르바이트하던 PC방에서 돈을 훔쳤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얼마 뒤, 목포교도소에 수감됐습니다.
모두 저 때문입니다.
동석씨를 만난 건 운명이었습니다. 그는 83년생, 나는 67년생.
무려 16살차이. 처음엔 동생처럼 대해줬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게 사랑이 될 줄이야. 처음 만나고 얼마 안돼서
그는 입원했습니다. 4일 밤낮을 앓더군요.
안타까운 마음에 간호를 해줬습니다. 그때 나에게 사랑을 느꼈나
봅니다. 하지만 나는 루푸스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였기에
그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2003년 말, 동석씨가 다시 응급실에 실려갔습니다.
도대체 무슨 병이냐고 물었지만 대답을 안하더군요. 의사선생님은
다발성 경화증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 병이 뭔가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물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좀 골치 아픈 병이죠”라고 대답하더군요. 몸이 굳거나 심하면
신경이 마비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왜 신은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걸까요.
그 순간 그를 사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내 한 몸
가누기 힘들지만 그를 보살펴 주고 싶었습니다. 한참 후에
내 병을 그에게 말했지만 이미 마음은 그에게 넘어가 있었습니다.
동석씨는 “내가 돈을 벌어서 당신을 치료해야 할텐데”라며
자책을 했죠. 하지만 그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에겐 내가 필요했고 나는
그를 사랑했습니다.
20년 만의 서울 나들이는 황홀했고 신혼생활은 달콤했습니다.
혼인신고는 못했습니다. 생활보조대상자에게 나오는 국가보조금
22만원이 끊길까봐 걱정이 됐습니다.
보호자가 생겨 무료 신장투석도 못하게 될까봐 겁났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부부였습니다.
그에게서 매일 10통씩 편지가 옵니다. 내용은 매번 같습니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운동 열심히 하고 건강히 지내라는
당부, 그리고 제발 기다려달라는 말….
우리 사이를 반대하던 제 딸도 동석씨 편지에 감동받아서 결국
마음을 열었습니다.
내년 3월이면 그가 돌아옵니다. 그 생각만 하면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그가 나오면 울 것 같아요. 다시는 그런 곳에
들어가지 말라고. 다시는 나를 혼자 두지 말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운명인 것 같아요.
사랑할 운명이오. 내 운명을 만나게 해주신 신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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