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찻집에 들러 - 정미숙
책장을 정리하다
우연히 그대의 흔적을 보았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며 주웠던 나뭇잎 한 장이
만지면 금방이라도 부서져 내릴 것만 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책 갈피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
수많은 세월의 벽을 넘고 넘어
이 계절에 또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낡은 시집 속에 숨겨진 이름 하나
추억 속 강물이 되어 그리움으로 출렁입니다 .
시집 한 권, 가슴에 품고 거닐던 그 길목에
아직도 빨강 공중전화 부스가 있는지
단풍나무 잎은 얼마나 아름답게 물이 들었는지
차 향기 물씬 풍기던
운치 있는 찻집은 남아 있는지
그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어
세월 속에 묻어둔 그리움을 캡니다 .
가을비 내리던 날
우산 없이 빗속을 걸어도 마냥 좋았던
그 시절의 아름다운 향기가
바람결에 실려 오는 것만 같아
가슴이 마구 뜁니다 ..
잊고 싶었던 순간도, 기억하고 싶었던 순간도
다시 올 수 없는 시절이기에
더 그리운 거겠지요.
그대여
이 가을에도 운치 있는 찻집에 들러
먼 미래에 캐어 보고 싶을 만큼의
소중한 이야기들을 심어 놓기로 해요.
그대의 가슴에, 그대의 삶 속에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먼 훗날 또 하나의 은빛 날개를 달 수 있도록
가을 찻집에 들러
이 계절이 주는 의미를
생각해 보기로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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