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스크랩] 그대는 어디에 두고

2747 2006. 8. 22. 16:41


      그대는 어디에 두고



      당신을 누구라고 말하리
      나를 누구라고 당신은 말하리
      마주 불러볼 정다운 이름도 없이
      잠시 만난 우리
      오랜 이별 앞에 섰다

      갓 추수를 해들인
      허허로운 밭이랑에
      노을을 등진 긴 그림자 모양
      외로이 당신을 생각해 온
      이 한철

      삶의 백 가지 간난을 견딘다 해도
      못내 이것만은 두려워했음이라
      눈 멀 듯 보고지운 마음
      신의 보태심 없는 그리움의 벌이여
      이 타는 듯한 갈망

      당신을 나의 누구라고 말하리
      나를 누구라고 당신은 말하리

      우리
      다 같이 늙어진 어느 훗날에
      그 전날 잠시 창문에서 울던
      어여쁘디 어여쁜
      후조라고나 할까

      옛날 그 옛날에
      이러한 사람이 있었더니라
      애뜯는 한 마음이 있었더니라
      이렇게 죄 없는
      얘기거리라도 될까
      우리들 이제
      오랜 이별 앞에 섰다


      후조(侯鳥) / 김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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