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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다 호감에 대한 일차적인 정서이면서도, 정확하게 분화하지 않은 ('분화되지 않은'이 아닌) 상태를 뭉뚱그릴 때 쓰기 좋은 말이다. '좋아한다'는 고백은 어쩌면, 내가 느끼고 있는 이 호감이 어떤 형태인지 알기 싫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건 아닐까. 사랑이라는 말을 쓰기가 꺼려질 때에 흔히 쓰는 말이고, 존경에도 흠모에도, 신뢰에도 매혹에도 귀속시키기 미흡한 지점에서 우리가 쓰는 말이 바로 좋아한다는 표현은 아닐까 싶다. 어쩌면 더 지나봐야 알 수 있겠다는 마음 상태이거나, 이미 헤치고 지나온 것에 대해 온정을 표하는 예의바른 말이거나, 적극적으로 판단 짓기에는 미온적인 상태이거나, 더 강하고 자세한 호감의 어휘들을 비껴가기 위한 방법적 거절이거나… 이런저런 것들의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버려진 영역의 호감들을 아우르는 말임은 분명하다.
반하다 ‘반하다'라는 말 앞에는 ‘홀딱'이란 수식어가 적격이다. ‘홀림'의 발단 단계. 그 어떤 호감들에 비해, 그만큼 순도 백 퍼센트 감정에만 의존된('의존한'이 아니라) 선택인 셈이다. 순식간에 이루어지지만, 그리 쉽게 끝나지는 않는다. 어차피 아무런 판단을 동원하지 않고 행한 호감의 의식이므로. 벼락처럼, 자연 재해처럼 한순간에 완결되는 감정이지만, 수습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매혹되다 ‘홀림'이 근거를 찾아나선 상태. 반한다는 것이 근거를 아직 찾지 못해 불안정한 것이라면, 매혹된다는 것은 근거들의 수집이 충분히 진행되어 안정된 상태이다. 풍부하게 제시되는 근거 때문에 매혹된 자는 뿌듯하고 안정적이다. 그러므로 즐길만한 것, 떠벌리고 싶은 것이 된다. 수집이 완료되는 순간은 쉽게 오지 않는다. 실망의 언저리를 맴돌다가도 어느새 다시 복원되고야 만다. 흔적이 남지만.
아끼다 사랑의 명백한 한 형태. 부모가 자식에게 행하듯, 아끼는 대상을 아낌없이 아끼기 위하여 스스로를 아낌없이 희생하는 경우가 아낌에 있어서 '최선의 병적'인 상태이다. 오래도록 두고두고 음미하기 위하여 발효의 시간을 기다리는 차분한 설레임도 아낌에 속한다. 그렇지만, 언제 어디서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욕망이라면, '아낀다'라는 말은 일종의 모독일 수도 있다. 쓰여지지 않고 간직된다는 것은 끌러보지 않는 선물꾸러미 같고, 읽혀지지 않는 책과도 같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반증하는 말일 수도 있고, 도무지 효용성을 찾을 길이 없다는 낭패감을 은유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틋하게 에워싸는 보호막과도 같은 호감. 손쓸 방법이 없고, 손댈 재간이 없는 대상을 향해 에둘러 포복해 가고 있는 구애.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흠모라든가 동경처럼 '거리'가 확보되어 있지만, 이 경우의 거리는 무수한 주름이 잡혀진 채 접혀 있어서 실제보다 심적 거리는 훨씬 가깝다.
매력 매력이란 늘, 상대방의 부정적인 요소들에게 끌리는 마음이다. 착하고 순하고 정직한 사람에게 우리는 결코 매력 있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럴 경우 미덥다는 표현을 더 쓰게 된다. 한 존재가 가진 결핍과 과잉. 모자라거나 지나친 성향들. 그것에 대하여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환호할 때, 이 낱말은 제법 용이하게 쓰이곤 한다. 누군가의 모자란 점과 지나친 점을 곱게 보아줄 때, 매력은 날개를 펼친다. 매력 있는 존재만을 좇는 사람은 자신이 매력 있어 하는 대상과의 관계에 대하여 늘 불충분하다. 결핍과 과잉은 언제나 관계에도 고스란히 전이되어서, 관계 자체의 결핍과 과잉을 낳는다. 게을러서 아름다운 사람은 관계에도 게으르며, 섬세해서 아름다운 사람은 상대방의 섬세하지 못함을 책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매력덩어리들은 언제나 상대방을 허하게 하거나 피곤하게 한다. 그렇지 않을 때가 오긴 온다. 결핍을 결핍으로 똑바로 인식하고, 과잉을 과잉으로 똑바로 인지하는 때. 그때란 대개 관계의 내리막길을 걸어내려 갈 때이다. 간혹, 매력 때문에 맺어진 관계 자체의 양 날개를 뚝뚝 분지르며 걸어내려 가곤 한다.
신뢰 흠모와 보은처럼 느리게 찾아온다. 흠모보다는 좀더 느리며 보은보다는 좀더 빠르다. 또한, 흠모보다는 안정된 상태이지만, 보은보다는 불안정한 상태이다. 실망이라는 거추장스러운 마음 상태를 몇 번 거치며 거듭날수록, 불에 달궈진 연장처럼 단단해진다. 대개의 다른 호감들이 추상적이고 희미한 상태에서 진행되어 초점이 잡혀지고 구체적이어지는 과정을 거친다면, 신뢰는 그것을 역행한다. 구체적인 이유들이 점철된 후에야 비로소 막연하고 추상적인 신뢰를 낳는다. 그 순서를 밟은 한, 신뢰는 최적의 강도를 갖게 되고 알맞은 온도와 거리를 찾아 뿌리를 내린다. |